전체 거리 3.3km / 도보 약 40분 소요
화부산거리는 KTX 강릉역부터 향교모탱이, 히말라야시타모탱이, 그리고 행복한 모루에서 교동사거리까지 은행나무 모탱이, 그리고 미술관에서 영동초등학교 중허리를 드나드는 미술관모탱이가 있다. 거리가 예쁘기에 길을 넘나드는 강릉사람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오래된 예술거리. 크로스오버되는 그 거리는 도시의 계절 변화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기에 사계절이 다 예쁘다.
거리 1.2km / 도보 약 15분 소요
강릉역 건너편 넓은 광장을 지나 화부산 방향으로 나란히 이어진 길은 700년 전통의 강릉향교에서 명륜고 옆을 따라 히말라야시타 거리까지 이어진 양지바른 길. 과거 화부산과 강릉역 사이 하천을 따라 까치다리가 놓여있어 가작다리라 불렸다.
강릉역은 원래 중앙시장을 가로지르는 기차가 지상을 달리고 있었다. 1990년대 비둘기 열차를 타고 정동진이나 동해에서 강릉을 오가는 여고생들이나 남학생들이 많았고 선생님들은 도계나 태백까지도 출퇴근을 하곤 했다. 그러던 것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2017년 12월 KTX 고속열차가 개통하면서 강릉이 KTX 시대를 맞게 되었다.
향교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이야기가 많다. 향교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년식을 진행하거나 전통혼례를 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한다. 향교에 여성유도회가 별도로 조직되어 있어서 청소년 성년식을 멋지게 치르는가 하면 신청을 받아 사모관대에 원삼 족두리를 쓴 전통 한복을 차려입고 홀기를 부르며 전통혼례를 행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중국에서 공자학당을 새로이 중건할 때 향교문화가 전혀 없어 한국에 와서 배워갔는데 강릉향교가 가장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여 배워갈 정도로 강릉향교는 역사가 깊다. 보물 제214호인 강릉문묘대성전과 함께 강릉향교는 고려후기 이미 설립되어 운영 중이었으며 고려후기인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중건했다고 하니 그 역사의 깊이를 향교 앞 은행나무가 말해주고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星)과 10철(十哲) 및 송조 6현의 위패가, 동무와 서무에는 중국 97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어 모셔진 성현들만 총 136위가 있어 국내 최대 위패를 모신 향교로 손꼽히고 있다.
중등교육기관으로 명륜당이 있어 지금도 명륜고등학교가 함께 있으며 이곳에서 강릉농고, 강릉여고 등이 설립되어 분가된 곳으로 근대적인 학교교육의 요람이기도 하다. 또한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석전대제를 지내며 성현들의 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숭고한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2013년 강릉향교 개교 700주년을 맞아 <강릉향교 700년사>를 발간하는 등 지금도 강릉향교는 지역 유림들의 든든한 울타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향교에는 ‘유도회’라고 하여 유림결사체가 별도로 조직되어 있으며 읍, 면, 동별로 유림들이 구성되어 그 대표들이 ‘장의’를 맡는 등 상당히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울러 향교에서는 오죽헌 옆 충효교육원을 별도로 두어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강학반과 서예, 한시 등의 과정도 운영하는 등 그 유서 깊은 역사에 걸맞은 지역사회 전통교육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전 이 산에 꽃이 많이 피어 꽃이 둥둥 떠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화부산(花浮山)이라 하였으며 대표적인 좌청룡 우백호 형상이다. 화부산 자락엔 민무늬토기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곳 아래쪽에 개천이 흘렀는데 강릉역 사이 개천에 ‘까치다리’가 놓여 있어 지금도 가작다리마을로 불린다.
교동이 교동인 이유는 조선시대 향교가 있어 교동으로 불렸다. 전국의 어디든 향교가 있는 마을은 교동으로 불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향교 주변엔 예나 지금이나 청년 학생들이 드나들었고 주변에 적당히 음식점이나 술집 등등이 모여 있었다.
또한 화부산자락엔 김유신장군을 모신 사당인 ‘화부산사’가 있다. 화부산이 꽃 화(花)자를 쓰는 이유도 화랑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보여 지는 대목이다. 실제 강릉의 화랑들이 심신수련을 했으며 차를 달여 마신 기록인 한송정이 남항진 일원에 남아있기도 하다. 삼국유사에는 김유신 장군이 죽어서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산자락의 정맥 끝자락 즈음에 화부산사라 하여 김유신 장군 사당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릉향교의 원조는 아마도 신라 화랑들의 공부방이 아니었는지 살짝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이곳 강릉향교에서는 지금도 명륜고등학교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으며, 인근에 강일여고, 교동초교 등이 모두 화부산을 안산으로 하고 있다.
위드 클레이는 글자 그대로 클레이 아트를 함께 하는 곳이다. 만들고, 판매도 하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 단오공원에서 단오장으로 나오는 굴다리에는 강릉시민가족 수천 명이 만들어 붙인 클레이아트가 섬섬옥수 그 손맛을 자랑하며 다양한 색채로 붙어있다.
사실 <위드 클레이>는 체험에 특화된 프로그램. 초벌구이된 점토판에 가볍게 드로잉하여 채색하는 기법을 쓰고 재벌구이하면 되는,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어서 많은 여행객들이 단오장에서 즐기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다.
위드 클레이에서는 클레이아트 체험이나 강좌도 운영하며 또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꽃무늬 화려한 접시나 그릇, 예술 가득 담긴 찻잔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클레이 아트를 강릉에 이식한 박지현 원장님. 위드 클레이 입구부터 작은 정원과 그 위에 접시위에 핀 꽃들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통 유리창에 기댄 수많은 작품들은 그간의 공력과 사연들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위드 클레이. 소소한 점토가 저토록 화려한 문양을 입기까지 위드 클레이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예술로.
거리 800m / 도보 약 10분 소요
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인 히말라야시타 거리는 거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무조건 히말라야시타 거리로 가야 한다. 산타클로스가 출연할 법한 엄청난 비주얼에 낭만적인 연인들이 눈 쌓인 거리의 풍경처럼 함께하곤 한다.
아방가르드 한 영화를 꼽으라면 이국적 풍경의 <바그다드카페>를 꼽아야 한다. 딱 히말라야시타 거리에 어울리는 이국적 풍경의 펍 <바그다드>. 오랜 기억의 건축물답게 오래된 나무문과 그 보다 오래되었을 법한 담쟁이넝쿨이 쿨~하게 이웃하고 있다. <바그다드>에서는 가로등처럼 느리게 켜졌다가 밤이 이슥하도록 거리에 풍경이 되어 빛나다가 다시 새벽안개 밀려오기 전에 떠나도 좋다. 여행자의 발자국처럼 평생 여행자의 목소리를 담고 사는 주인의 향기가 바그다드 여기저기 가득하다.
우리의 바그다드 주인공은 외딴 사막 한 가운데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는 딱 브랜다와 자스민을 닮았다. 자신의 삶에 어떤 것도 개입되길 거부하는, 그래서 사람이 타인을 통해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딱 그런 공간이 히말라야시타 거리에 있다.
파스텔상점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얼 하는 곳인지 상상의 나래가 와 닿지 않는다. 그리고 히말라야시타 거리 안쪽이라는데 입구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런 장소가 있을 법 하지 않다. 그런데 바그다드 골목을 들어가 보니 알겠다. 아. 파씨네 상점은 여기 있었구나.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며 감성돋움에 한 번 더 놀라야 한다. 일단 간판부터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피크닉 바구니와 캠핑용품을 대여해주는 상점이다. 파라솔, 썬베드, 아이스쿨러, 라탄 티테이블, 돗자리 등등 없는 게 없다. 바닷가 한적한 모래밭에 누군가 연인이나 친구가 정말 예쁜 테이블과 파라솔, 썬베드 펴놓고 연예인처럼 프사 촬영하고 있다면 아마도 그 세트는 파스텔상점 것이 아닐까 생각하시면 된다.
그리고 여기는 엽서 맛집. 골라 담을 엽서들이 엄청 많다는 것. 그리고 일회용카메라부터 핑크빛 포토존에서 인생샷 찍어도 좋고, 낚시도구대여, 캠핑족들이 좋아할 법한 소품이며 수채화피크닉까지 없는 것 빼 놓고 다 있다는 감성부자들을 위한 상점. 파스텔상점에 가면 일단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거 각오하고 가셔야 한다.
‘가베만쥬’는 강릉 최초의 커피빵이다. 강릉이 커피도시로 변모해가면서 탄생한 커피빵. ‘가베’는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왔을 때 부른 첫 명칭이고, 만쥬는 팥고물이 안에 든 근대식 빵의 명칭이었다. 그렇게 조합해 만들어진 명칭이 가베만쥬. 대통령상까지 받으며 커피빵의 명성을 만들어낸 가베만쥬가 처음 선을 보인 곳이 이곳 월화거리 위편, 교동사거리에서 문화의 거리로 들어가는 반대편 초입에 있다. 커피빵의 탄생으로 인해 강릉의 커피문화가 보다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순수하게 커피에 집중하던 커피인들이 빵이나 떡, 케이크나 마카롱과 같은 디저트문화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길목에 가베만쥬가 있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문화이자 그 시대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악마보다 붉고 달콤하다고 했던 시절엔 악마가 성행했을 터이고, 명료해지는 정신철학의 산물이라 했을 무렵엔 철학이 시대사조로 세기말의 변화를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대의 커피에는 어떤 문화가 담길 것인가? 아니 담겨 있을까? 시대가 더 지나가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아날로그 문명과 AI 문명dl 격돌하는 전환기의 혼미함이 어떻게 담겨질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까? 골목의 시작이자 끝 지점인 바그다드에서 가베만쥬 까지를 걸으며 천천히 묻는다. 그대 진정 깨어 있는가?
우리 시대의 매운맛을 찾는다면 교동반점 짬뽕 먹으러 한 번쯤 들러도 좋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하게 매운 맛. 처음 교동반점은 짬뽕집이라기보다 중국집이었다. 짜장면도 하고 탕수육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시절 중국집 풍경처럼 입구는 드르륵 옆으로 밀어 닫는 오래된 미색 나무문이 빛바랜 풍경처럼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십 년 짜장과 짬뽕을 뽑던 원래 주인장의 손맛이 더해져 어느 날 짬뽕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 여름에도 줄을 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1세대 사장님은 자리를 옮기시고 지금은 레시피를 전수받은 다른 분이 하시지만 맛은 그대로인지라 편의점 교동짬뽕은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만날 수 있는 별미가 되었다.
이곳의 짬뽕이 그토록 유명한 이유는 뭘까? 세월을 담은 깊은 맛이 아닐까 싶다. 오래 우러난 육수가 일단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낸다. 더구나 여름에 먹을수록 개운한 맛이 더하다. 그리고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고 선 백년가게의 힘이라고 할까? 어느덧 교동짬뽕은 수도권에서도 맛의 고장 전주나 청주에서도 만날 수 있는 짬뽕 브랜드가 되었다. 매운맛이 생각난다면 교동반점 그 짬뽕이 제격이다.
거리 500m / 도보 약 5분 소요
은행나무는 과거 선비의 뜨락을 채우던 나무 중 하나였다. 강릉은 유달리 은행나무에 대한 전설도 많은데 이곳 <행복한 모루>에서 제일고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은행나무길은 유달리 단풍이 예쁘게 들어 까르르 웃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소녀소녀한다.
도서관 이름이 <행복한 모루>라고요? 여행자들은 ‘행복한 마루’로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쇠를 바룰 때 쓰는 바탕이 되는 쇠뭉치를 이르는 순 우리말. 과거 명주군청 자리로 남아있던 강릉의 언덕마루 건물을 새로운 용도로 고민하다가 2010년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면서 시민공모를 거쳐 만든 이름이 <행복한 모루>이다. 즉 행복을 짓는 대장간 같은 의미라고 할까? 어느 새 행복한 모루는 강릉의 랜드마크가 되어가고 있다.
성산포 시인 이생진은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연작시처럼 써 두었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보고, 바다가 사람보다 더 잘살고,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지 않아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며,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고 노래했다. 그래서인가?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주인장은 바다를 닮았다. 바다처럼 퍼주기를 좋아하고, 얘기 듣기를 좋아하고, 적당히 면박을 주기 좋아한다. 식당인지, 선술집인지, 영화 같은 아지트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풍경의 살림.
그래서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바다 같은 시를 닮았다. 벽 여기저기 붙어있는 엽서와 글들은 모두 그리움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딱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날 같은 곳.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그래서 그립다.
커피학교라고? 그것도 동방? 원래 동방은 디자인학교였다. 과거 강릉 오거리에서 동방디자인학원으로 유명세를 탔던 동방은 교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커피도시 브랜드가 생겨날 무렵 커피학교를 만들었다. 커피학교라니? 뭔가 낭만적이지 않은가? 커피학교는 은행잎이 요란하게 바람에 흩날리는 가을날, 저만큼서 밀려오는 커피 콩 볶는 냄새가 거리를 메울때가 제격이다. 하지만 사계절 커피학교가 열리고, 일자리창출과정으로 취업강좌나 대학 강좌도 열리곤 한다. 커피강의실과 실습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추고 있으니 커피를 배우고 싶은 분들에겐 늘 문이 열려있다.
사실 강릉엔 커피아카데미와 커피학교가 열 손가락을 넘는다. 커피학교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스타일에 따라 달라진다. 커피맛이 그러하듯이. 미술관의 바로 코 밑에 커피학교가 있어 더 예술혼 충만하게 느껴진다. 커피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반드시 카페를 차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커피문화를 나도 좀 알고 싶어서. 즉 지적욕구의 충족이다. 그래서 예전엔 ‘강릉 가서 글 자랑 하지 말라’ 했지만 이즈음엔 ‘커피자랑 하지마라’ 한다. 왜냐고? 커피에 관한한 밤새도록 얘기해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림고수들이 많다는 얘기니까.
참깨처럼 고소한 공간이라 <깨북>이란다. 자고나면 생겼다가 없어지는 별처럼 명멸하는 독립서점세계에서 어느 새 강릉의 독립서점으로 최 장수하고 있는 책방이 <깨북>이다. 물론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전까지 교동 택지에도 있었고 초당동 살이도 한참 했었다. 지금의 자리는 2020년 5월 은행나무 거리인 미술관에서 제일고 사거리 방향 버스정류장 근처 2층에 자리 잡았다. 미술관이 가까워서였을까? 문화공간으로 이곳에 터를 잡고 서부시장에서 오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안상현 대표님의 문화실험이 자못 흥미롭다. 특히 이곳이 재미있는 것은 디자인 실험실과 같은 곳이어서 디자인지우개나 부채, 노트 같은 다양한 형태의 상상력이 춤추는 공간이다. 또한 독립출판을 병행하고 있기에 강릉에서만 볼 수 있는 책들이 많다. <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 <정리의 밤>, <바다에 살고 싶어서> 등등 로컬리티를 표방하는 책들이 손짓을 한다. 한 장만 넘겨보라고. 안사고는 못 배길 걸. 그래서 지갑이 열린다. <열려라 참깨>처럼 그렇게.
거리 800m / 도보 약 10분 소요
히말라야시타거리 사잇길로 강릉미술관 언덕 너머 영동초교로 넘어가는 길은 한국전쟁 당시 8사단이 주둔했던 사단자리로 불리며 미술관 언덕 너머 제일고 뒷 봉오리는 용봉대로 불릴만큼 용과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전망도 좋고 인물도 많았다고 한다. 풍림아이원 아파트사이를 지나 영동초교로 이어지는 도심 중허리길.
100년이 넘은 한옥이 고즈넉한 카페로 변신한 곳. 앞마당엔 잔디와 함께 로즈마리와 온갖 화초들이 흐드러지게 철마다 핀다. 내부엔 오래된 한옥에 있음직한 ‘다듬이돌’과 재봉틀 등등이 있으며 걸맞은 단팥죽과 영양떡, 미숫가루빙수 등 추억 돋는 메뉴들이 고소한 향기를 전해준다.
이곳은 미술을 전공한 선생님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한옥을 개조해 갤러리풍 문화공간으로 만든 지 어언 10여년이 되어간다. 이곳에서 자작나무그림 전시회부터 엽서전, 청년작가전, 패브릭과 자수전 등 다양하고도 아기자기한 전시도 여러차례 열었다. 그 만큼 작가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얘기. 특히 예술가의 손길과 감성이 묻어나는 오래된 고재와 새 살림의 어울림은 ‘한국식 미학은 이러해야 하구나’하는 교과서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영화촬영을 하던 조성규 감독님은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사장님이 주는 따뜻함이 좋다’고 평하기도 했다.
어느 날 마음이 헛헛해지거들랑 한옥카페 근대식 유리창에 기대어 햇살 한 줌 얹어 더없이 감미로운 단팥죽이나 유자청 한 잔 들이킬 일이다. 그 보다 내게 주는 큰 선물 없을 터이니.
시립미술관은 강릉의 언덕마루에 올라앉아 원도심이 환해 내려다뵈는 전망 좋은 동네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 1980년대까지 도서관이어서 강릉의 중고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거나 좋아하는 짝사랑 바라기를 했다는 곳. 오래도록 지역 청소년들로부터 도서관으로 사랑받던 이 공간이 미술관으로 변모하면서 화가들의 아지트로 바뀌었다. 2층 공간에 3개 전시관이 있어서 각각 기획전과 개인전, 단체전 등의 전시로 사계절을 수놓고 있다.
지금은 노세주 조각가의 조각상을 비롯, 작품들이 미술관 안팎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으며 미술관 너머 길을 따라 우암미술관, 도자공방, 포스트카드 등 재미있는 예술공간들이 아기자기하다. 이제는 KTX 강릉역에서 트렁크를 끌고 이곳까지 미술관람과 전망대 포토존으로 사진 인증샷 찍으려는 청춘들이 늘고 있다.
엽서가게? 글쎄 가게가 엽서만 팔아도 된다고?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게가 엽서가게. 포스트카드 오피스라 이름 붙여진 이 엽서가게는 강릉에서는 처음 엽서전문점으로 문을 연 곳이다. 마치 우편배달부를 연상케하는 캐릭터부터가 엽서와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게 한다. 포스트카드를 보관하듯 벽면으로 오래된 도서관 서가의 독서카드보관함 같은 것이 있다. 이곳에서는 포스트카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 디자인 상품들이 ‘나는 강릉이예요.’로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사장님이 청년들이지만 오랜 디자인 노하우에서 우러나오는 강릉의 이모저모를 다양한 디자인 컨셉으로 만들어낸다. 딱 ‘엽서 맛집’이라 이름붙이기 좋은 곳. 미술관 언덕너머에 이런 디자인 공간이 있을 줄이야. 이제는 강릉 시민들보다 여행자들이 인스타를 통해 더 많이 찾고 있는 곳.
그렇다면 엽서가게는 엽서만 팔까? 정답은 문화를 팔고 있다는 것. 포토존으로 쓰여도 좋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감성을 위해 지갑을 열기 망설이지 않아도 좋은 진정한 디자인 전문점. 포스트카드에 뭔가를 남기고 싶다면? 인생의 중요한 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나 만의 디자인을 담은 엽서에 남겨도 좋겠다. 나는 소중하니까.
카페 베를린은 제일고 뒤편 미술관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있다. 독일식 커피에 무엇보다도 브런치와 파스타, 치즈파니니와 샐러드 등의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특히 2층에는 우암미술관이 있어 일찍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원래 우암미술관은 율곡선생의 후학으로 강릉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후손인 송순근 관장님의 애정이 묻어있는 곳이다. 2017년에는 우암미술상을 제정하여 미술인을 후원하기도 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시립미술관 양쪽으로 한 쪽에는 <교동899>가 다른 한 쪽에는 <우암미술관>이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어 예술의 길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 보이는 것들. 그 중에는 이렇게 사잇길과 산책로를 잇는 예술공간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맛보는 휴식 같은 순간. 그 순간이 치열한 하루를 위로한다. 오늘도 따뜻한 햇살 같은 한 순간이 있었구나. 햇살 한 줌에도 봄은 열리고, 가을은 여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