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거리

문화의 거리

전체 거리 1.2km / 도보 약 15분 소요

1980년 중반, 386세대로 대별되는 폭발적인 문화 이반세대들이 카사, 다랑, 백년서점, 예맥화랑 들을 일궈가던 시기. 대학로에서 살짝 비켜난 이곳에 예총 전시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문화의 거리 명명식을 하기에 이른다. 문화의 거리는 기업은행부터 손병욱베이커리에 이르는 문화 중심 거리. 지금도 임당생활문화센터, 말글터, 테라로사, 메이븐커피, 그리고 뒷골목으로 임당방앗간 등 레트로 감성의 문화공간들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학로 모탱이 문화의거리 모탱이

1. 대학로 모탱이

거리 400m / 도보 약 5분 소요

대학로는 강릉지역 대학생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동네. 주점, 의류, 밥집 등 청년들이 좋아할 모든 것의 집산지. 여전히 이곳은 대학로로 강릉의 중심으로 불린다.

대학로 모탱이

대학로

인근에 대학이 없는데 강릉인들은 모두 이곳을 대학로로 부른다. 심지어 요즈음엔 대학생들이 솔올택지나 유천지구로 많이 몰리는데 그래도 이곳은 여전히 대학로이다. 왜 대학로일까? 과거 승용차가 많이 없던 시절 강릉대학, 관동대학, 영동대학 등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왔다. 모두들 버스 내리는 곳이 이곳 대학로 입구였다. 그곳엔 오래된 빵집도 있었고, 막걸리집도 있었고, 뮌헨호프나 예향죽집, 하얀집, 작은천국 같은 랜드마크형 술집과 밥집들이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은 값싸고 양 많은 푸짐한 집들을 찾아다녔고 편집숍처럼 값싸고 질좋은 옷가게에서 쇼핑을 했다. 대학로에는 대학생들로 넘쳐났고 저녁이면 불야성이었다. 그 좁은 가운데 길로 <25시>와 <ABC>라는 나이트클럽까지 있었으니 대학로의 밤은 새벽이 오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청춘은 혈기 넘쳤으며 시대는 술잔을 들게 만들었던 그날. 대학로는 청춘의 심장이었음을.

대학로

금학칼국수

신영극장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시내 한 복판에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싶은 풍경을 만난다. 오래된 나무문과 그 보다 오래된 듯 보이는 마당과 작은 방들. 그리고 그 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낙서. 강릉의 오래된 맛을 찾는다면 이곳에 들러 보아야 한다. 벌집칼국수 만큼이나 오래된 맛. 그리고 이곳의 별미는 다름 아닌 콩나물밥. 강릉의 여기저기엔 뱃사람들의 새벽해장국이었다는 장칼국수와 함께 기름간장에 비벼먹는 콩나물밥이 금학칼국수만의 오랜 비법의 맛이다. 수십 년의 세월, 어머니의 어머니시절부터 내려오던 이 맛있는 한 그릇은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별미이다. 더구나 시내 한복판에 이토록 오래된 기와집 사랑방에서 먹는 맛은 진짜 기막히다. 그리고 아울러 벽에 쓰여 진 낙서는 수십 년전 지금의 어른들이 학창시절 써 넣었음직한 낙서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은 추억의 앨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풍경에 사로잡힌다. 나는 가끔 저 벽의 낙서처럼 천천히 지워져가는 인생의 풋풋함이 아쉬워 다시 콩나물밥을 핑계 삼아 저 곳에 오래도록 앉아있다.

금학칼국수

오래된 빵집 바로방

대학로로 불리는 이곳에 바로방 같은 빵집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것도 빵 종류가 다양하거나 요즈음 세대의 입맛에 맞춰 날렵한 기교를 부리기보다 우직하게 크림빵, 소보로빵, 고로케, 찹쌀 도너츠 그 정도 뿐이다. 그럼에도 여행자들은 꾸역꾸역 그까지 지도를 켜고 찾아와 줄까지 길게 늘어선다. 비결이 뭘까? 바로 오래전 우리가 먹었던 맛이다. 그리고 한결같은 맛이다. <응답하라 1997>의 그 시절, <솟대몰이> 막걸리가 맛있고, <카사>는 커피가, <베이스캠프>는 음악과 파르페가 <작은 천국>은 김치볶음밥이, <하얀집>은 돈까스가 맛있었다. 그리고 바로방은 크림빵이 맛있었는데 다른 집들은 모두 사라졌으나 아직 그 자리 그 대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방>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생존하게 된다는 진리. 오늘도 길 건너 중소기업은행 대로변에서 고소하게, 혹은 은은하게 흐르는 빵 굽는 냄새가 솔솔 넘어와 저 길 얼른 건너가 빵을 사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 있다. 빵은 진리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1990년. 강릉에 1미터가 넘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고 송정 롤러스케이트장, 그리고 강릉대체육관이 붕괴되었다. 더하여 신영극장이 무너져 내렸다. 강릉사람들은 어지간한 눈에는 놀라지 않았는데 이 신영극장의 붕괴는 마음속의 뭔가가 쿵 하고 무너지는 것처럼 크게 다가왔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모두 신영극장 앞이 약속장소였고 그 앞에 서 있으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거의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오래된 신영극장이 무너져버리고 새롭게 들어선 쌍둥이건물은 옛 맛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중앙극장, 문화극장, 롯데리아극장 등과 함께 유지되다가 2009년 결국 문을 닫았고 강릉의 상징이던 마지막 극장이 은퇴했다. (물론 오거리에 들어선 CGV의 등장이 일조했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리고 2012년, 10여년 이상 활동해오던 강릉의 시네마떼끄에서 신영극장을 독립예술극장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은 기꺼이 십시일반 상영관 의자기부의 형태로 기금을 보탰고 신영극장이 다시 살아난 것에 고마워했다.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극장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영화를 틀고, 여름이면 정동진에 슬금슬금 모여들어 독립영화제를 연다. 그 오래된 영화사랑에 경의를 표하며 여행자의 발길도 종종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머무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옛날 신영극장 앞에 커다랗게 그려지던 벽화 같던 영화간판 다시 보고 싶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2. 문화의거리 모탱이

거리 800km / 도보 약 10분 소요

문화의 거리에 문화가 없다는 여행자들을 종종 만난다. 사실 과거 이곳에 예총 건물이 있던 1980년대 말에 붙여진 이름. 오랫동안 동사무소로 쓰이다가 이제는 임당생활문화센터가 되어 새로운 문화의 분수를 쏘아 올리기 위해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는 곳이다. 아직 토종서점 말글터가 남아있고 테라로사와 손병욱베이커리 같은 카페와 토종 빵집들이 선전하고 있는 거리.

문화의거리 모탱이

백년서점 말글터 Since 1989

문화의 거리의 문화를 찾자고 하면? 지금은 사라진 이름 <카사(CASA)>. 그 시절 문화의 거리 상징 같은 곳이었다. 시낭송회도 했고, 사진전도 하고, 시집 출판기념회도 하고 그런 공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절을 추억하는 유일한 이름이 아마도 백년서점 <말글터>가 아닐까 싶다.

<말글터>는 원래 처음 이름이 <백년서점>으로 문화의 거리 끝단 지금 <손병욱 베이커리> 옆쪽에 있었다. 그 시절 그 곳은 좁은 서점에 책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책 길을 헤치고 들어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어야 했다. <사회구성체논쟁>이며 <헤겔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같은 사회과학서적이며 당시 금서에서 갓 풀려난 막심 고리끼와 같은 러시아 소설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1990년대엔 단골서점, 영동서적, 강릉서점, 삼문사, 동아서점 등이 어깨를 나란히 했고 김도언 대표님이 새로 문을 연 <백년서점>은 일종의 기린아였다. 하지만 청춘들은 새로운 서점에서 김지하의 <오적>이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같은 것을 찾아 읽으며 일종의 해방구 같은 지식의 해갈을 느끼곤 했다.

그곳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른 서점들이 대부분 명멸하여 도심을 벗어나거나 산화하는 동안 오롯이 원도심 문화의 거리를 지키고 섰다. ‘고마워요. 말글터.’ 그 자리 그 대로 있어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징크스나 상징 같은 것이 있다. 그 서점이 아직 그 자리 그 대로 있어 줌으로 해서 마치 내 청춘이 보상받는 것처럼 푸근한 느낌. 말글터는 강릉의 백년서점 그대로 서서 마르께스 같은 이가 ‘백년 동안의 고독’같은 멋진 이정표가 될 글도 남겨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도록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글쟁이들의 친구들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백년서점 말글터 Since 1989

테라로사 임당점

구정면의 테라로사 본점 만큼이나 김용덕 대표님이 공을 들인 문화의 거리 <테라로사 임당점>. 강릉의 문화 좀 한다는 청춘들에게 한 동안 풍경은 말글터에 들러 책 한 권 사서 윗층의 테라로사에 들러 모닝커피는 핸드드립으로 내린 아이스 커피를 앞에 놓고, 넷-북을 켜 뭔가 작업하는 모습을 선보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모임을 꾸리고, 여행후기를 나누는 그런 모습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빨간 벽돌에 나무문. 그리고 오래된 고재로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는 커피 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철마다 잘 블랜딩 된 커피를 맛보는 것도 이집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문화의 거리에서 아침을 맞는다면 테라로사에서 모닝 커피 한 잔 쯤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 곳에서는 수녀님도, 신부님도, 비구스님도, 학생도, 교수도 평등하다. 강릉의 커피문화가 쉽게 정착한 것도 그걸 누릴 줄 아는 시민들의 문화의 성덕 아니었을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커피도시의 향기도 하루아침에 무르익지 않는다. 커피는 즐기는 사람이 주인이고 마스터다.

테라로사 임당점

우리 옛 초가집 - 오금집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강릉 도심에서 초가집 찾기? 아니 초가집이 시내에 있다고요?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아무리 찾아도 찾기 어려운 분들 위해 드리는 정보. 중앙동 주민센터 바로 뒷골목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집. 강원도 유형문화재 80호로 등록된 어엿한 문화재 되시겠다. 강릉도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초가집으로 강원도의 옛 건축양식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낮은 지붕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이 초가집은 돌에 흙을 이겨 쌓은 담장, 부엌 여닫이 판자문, 해우소와 흙을 싸 바른 오래된 굴뚝까지 예전 우리 고향마을의 풍경집인 것처럼 정겹다. 아니 문화의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초가집에서 인증샷 찍을 수 있다고요? 얼른 가봐야겠네.

화사한뷰티어겐

화사한 느낌의 에스테틱숍이 문화의 거리 손병욱베이커리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화사한? 문자 그대로 화사하고 아름답게 다시 피어나라는 의미란다. 이곳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에스테틱 전문가들이 모여 운영하는 공간. 국내 최고의 한방 화장품 전문가와 한의사 등이 협업하여 비건 화장품을 비롯한 개인별 체질에 맞는 한방 화장품 등으로 케어 해 주신다. 아울러 체질과 그날그날의 에너지와 바이오리듬까지 체크해 몸에 맞는 아로마와 뷰티 용품을 사용하여 최적의 케어 프로그램을 선물해드린단다. 아울러 화사한 뷰티어겐은 갤러리를 표방하고 있다. 입구에 김혜연 작가의 100호 그림인 ‘생명의 여신’ 과 강릉단오제 설화를 모티브로 한 ‘호랑이와 여신’ 등이 있다. 이태희 도예가의 멋진 달항아리로 자리하고 있으며 김지수 작가의 정물화도 소장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작품을 통해 마음까지 진정으로 힐링되는 화사한 공간을 추구한다.

소풍길

임당생활문화센터

<카사(CASA)가 번성하던 시절. 그 맞은편엔 임당동사무소가 있고 이층에는 예총 사무실과 작은 전시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학생들이 편하게 시화전도 열었고 미술전시나 사진전, 작은 공연 등도 곧잘 열리곤 했다. 그리고 그 것이 끝나고 나면 가까이 <카사>나 <다랑>으로 몰려갔고 여흥이 남으면 중앙시장 순대국밥집이나 서부시장 부침개전에 막걸리를 들이켜러 갔다. 근처에 <다리>도 사랑받았고 이 인근에는 오래전부터 서예하는 벽진선생, 초대 국전화가 김덕남 선생, 황금찬 시인, 조병화 시인, 신봉승 선생 등등 쟁쟁한 분들이 드나들었다. 인근에서 당대 라디오 트로이카로 불리던 김기덕 선생의 라디오 생방송이나 최고 문인들의 문학강연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곳이 오래도록 동사무소로 사용되다가 다시 생활문화센터로 변모하였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아지트로 버스킹도, 낭송회도, 작은 음악회와 독서토론, 인문동아리 등등이 생활문화클래스를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곳. ‘임당’ 이라는 오래된 문화의 이름표가 21세기에도 빛나고 있어서 좋다.

임당생활문화센터

100년 임당방앗간

예전 창일떡공장 시절에 이곳의 떡이 유달리 맛났다. 임당방앗간. 정말 도심 안에 이런 공간이 남아 있어도 되는 거냐고? 거기가 몇 해 전까지 추억의 사진을 뚫고 나온 듯 옛 풍경 그대로의 방앗간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단골들은 여전히 여기서 잡곡을 찧고, 메주를 빻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임당방안간이 한참 문을 닫더니 간판을 바꿔 달았다. 카페 100년 임당방앗간. 글쎄. 100년만 됐을까 싶을 정도의 분위기. 입구부터 레트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감성 돋는 옛 나무절구와 오래된 가구, 의자, 그리고 방앗간라떼나 옛날 쌍화차, 수제 팥빙수, 인절미 샌드, 흑임자 케이크 등 맛있는 디저트카페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오래도록 설날과 추석 밑이면 떡을 하려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길게 줄을 늘어섰던 이곳이 이렇게 세월 따라 새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런 걸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의 뼈대를 어떻게 갖추어가야 할지 고민할 일이다. 오래된 풍경 앞에서 사진 한 장 찰칵, 내 인생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도 찰칵. 매 순간이 찰나의 예술이었음을 이곳에서 깨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