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시장 거리

서부시장 거리

전체 거리 750m / 도보 약 10분 소요

서부시장은 한때 강릉의 살림 반을 책임지던 곳.
홍제동과 교동 주민들은 중앙시장보다 이곳 서부시장에서 나물과 야채, 생선을 샀고 이 시장통에서 기름을 짜고, 명절이나 제사떡을 해먹곤 했다. 아울러 식육점과 서부통닭 등은 당시 없어 못 팔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인근대학생들이 서부시장 지하에 들러 감자전이나 순대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암울한 시대와 최루탄 가스를 날려 보낸 곳이기도 했다.

동부시장과 함께 강릉에서 최초로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 곳이기에 지금도 2층을 지나 3층을 향하면 주상복합의 주거공간이 나타난다. 강릉에 오래 산 사람도 잘 모르는 사실인데 이곳에 사는 분들이 예전 모두 한 가닥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여전히 살기 참 좋은 동네라는 사실. 서부시장은 강릉의 서부에 있으며 마치 서부 개척시대처럼 우리 강릉의 현대사를 개척한 주인공들의 삶터이다.

임당동성당 모탱이 서부시장 모탱이

1. 임당동성당 모탱이

거리 350m / 도보 약 5분 소요

임당동성당의 앞과 뒤로는 선교사와 신부님, 수녀님들이 많이 사셨고, 어려웠던 1960년대엔 밀가루와 우유가루로 빈민구제와 나눔을 실천했으며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래서 여전히 임당동성당은 강릉의 중심가에 세월과 사람을 지키고 서서 많은 이들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있는 것.

임당동성당 모탱이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저토록 오래된 건물에 있다는 것이 늘 신기했다. 그런데 그곳이 원래는 강릉읍사무소가 있던 곳이란다. 명주군청도 옆으로 나란히 있었고 말이다. 1968년 처음 한국은행 강릉주재사무소로 문을 열었고 1974년 강릉출장소로, 1976년 지점으로 승격되면서 영동지역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관으로 발돋움해왔다. 이 인근에는 얼마 전까지 대도호부 옆으로 강릉우체국이, 대도호부 자리엔 1990년대 말까지 강릉시청이 있었으며 뒤로는 강릉경찰서, 법원, 전화국 등등이 있었으니 관청지대였던 것이다.

한국은행 강릉본부는 2009년 오만 원 권 신권화폐가 생기면서 신사임당이 표지인물로 들어가게 되면서 아들 율곡 이이 선생과 함께 수록됨에 따라 일명 모자화폐 탄생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2017년 화폐전시관을 개관,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여 화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근대유산 임당성당

주문진성당 야고보신부님이 1931년 강릉읍에 12칸짜리 가옥을 매입하여 분당 건물로 쓰다가 1934년 임당동으로 이전한 것이 오늘에 이르러 임당동성당은 근대문화유산 제457호로 등재가 된 문화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당동성당은 강릉의 근현대사를 함께 했으며 갈바리의원의 탄생을, 그리고 한살림의 탄생을 많은 선교사들과 함께 지켜본 증인이자 때로는 산파이기도 했다. 강릉에 신용협동조합이 상당한 조합원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성당의 역할이 컸다. 실제 1973년 성당 신도들에 의해 신협이 결성되어 문을 열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학교도 만들어 운영한 적이 있는데 해방 직후인 1946년,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성심공민학교를 만들어 운영하였다. 후에 성심중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10여 년간 42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57년 교육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폐교했다. 이처럼 임당동성당은 강릉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름표임에 틀림없다.

근대유산 임당성당

벌집 칼국수

강릉은 장칼국수가 오래도록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수십 년을 전설처럼 장칼국수 만드는 집이 있다. <벌집칼국수>. 전형적인 북방식 ㅁ자 집 형태를 갖춘 이 집은 외부의 쇠창살이며 담벼락, 집안의 구들장이며 마룻바닥이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장칼국수도 그 나이만큼 먹은 셈이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시대의 매운 맛을 찾는 청춘들이 아침부터 겨울까지 줄을 열심히 서는 모습을 보며 오래된 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맛있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장칼국수가 매콤하여 땀이 뻘뻘 흐를 정도로 후루룩 쩝쩝 먹다보면 뒷끝은 맑고 깔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애호박이나 무와 같은 이 집 특유의 뒷맛을 잡아주는 음식비법이 있을 터이다. 그리고 이 집을 앞뒤로 마주하고 있는 집들이 임당성당이나 선교사의 집이거나 근대 최초의 병원인 <명주의원>터이거나 그러하니 어쩌면 세월은 잠깐이거니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된 일명 백년가게들의 맛은 쉽사리 잊혀 지지도, 따라잡히지도 않는다. 청춘이여. 무엇이든 잘 하고 싶거들랑 오래도록 할 것. 지치지 말 것. 그리고 긴 호흡으로 즐길 것.

2. 서부시장 모탱이

거리 400m / 도보 약 5분 소요

서부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좁고 얇은 느낌이다. 하지만 과일가게가 시장의 양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시장 느낌을 살리고 있고 칼국수집, 닭집 등등의 식당들은 여전하다. 아울러 서부시장 주차장 앞으로 나란히 선 식당들에선 일제히 감자전과 부침개, 메밀전병, 추어탕 등 서민들의 음식들이 달콤한 냄새로 유혹한다. 다른 골목으로는 기름집들이 늘어서서 여전히 기름을 짜먹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서부시장 모탱이

감자전 식당가

감자를 여전히 손으로 갈아 즉석에서 만들어 주시는 맛이 일품이다. 손으로 직접 갈아 만들었으니 씹히는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또 금방 지져냈으니 그 고소한 맛이야 이루 말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강원도는 감자바위로 불릴 만큼 감자 주산지 아닌가? 어제 캐낸 감자, 즉 탄소마일리지가 그 만큼 적으니 자연도 생각하고 아울러 맛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 만점 감자전 예찬이다. 모두 제각기 다른 손맛을 자랑하니 감자전, 김치전, 메밀전까지 두루 맛보시길 권한다.

감자전 식당가

야행카페

서부시장 1층에 작고 아담한 카페가 들어섰다. 최근 강릉문화원의 문화재야행 프로그램이 이곳 서부시장에 펼쳐지면서 거점 공간으로 만든 곳이 야행카페. 문화원에서 운영하는 곳인 만큼 강릉문화 관련 잡지나 책들이 소소한 재미를 전하고 있으며 수제 청이나 차 종류도 많아 편안하게 시장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책을 뒤지다보면 강릉야행과 강릉의 문화재 이야기도 구경할 수 있으며 강릉의 설화나 전설,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들을 접할 수 있어 이 공간이 좋다. 또한 시장 초입에 있어 시장의 이모저모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있으니 여행자쉼터처럼 이곳을 들러 잠시 쉬어가는 한 나절을 만들어도 좋겠다.

야행카페

갈바리의원

갈바리의원은 1964년 호주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님들이 아시아 최초로 건립한 호스피스 전문 병원이었다. 하지만 호스피스병원만 고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감기환자부터 아이가 급체를 했다거나, 종기가 났다거나, 혹은 혈압 약을 받기 위해 강릉사람들은 갈바리의원을 열심히 드나들었다. 갈바리의원의 초기 낙성식 이후 사진이나 사료들을 들춰보다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전쟁 후 60년대에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산파들이 부족했던 시절, 병원 수녀님들과 의사선생님들은 출장 산파를 전문적으로 하기까지 했단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교육을 별도로 해야 할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으며 강릉의 부족한 병원시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부인과 병원역할까지 도맡아 했다고 한다.

이제는 서서히 인생을 정리하시려는 분들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강릉의 도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오래된 병원이라기보다는 수도원 느낌까지 나는, 그래서 수도사님들이 사시는 듯한 분위기는 갈바리의원만의 기품까지 느껴지게 한다. 호주 자매회님들이 몇 해 전 한국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이역만리 머나 먼 땅 사람들의 마음이다. 나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에게 저토록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눈 적 있는지 묻는다. 자신이 없다.

갈바리의원